두 거장의 만남.
스티븐 킹은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하나이다. 그가 현재까지 집필한 작품은 장편 60여 편, 단편 200여 편으로 그중에 영화화된 것만 60편이 넘는다. 그는 공포 소설의 대가로 알려졌지만 문학적인 능력마저 인정되는 분위기이다. 그의 소설들을 보면 알겠지만 하나같이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들이다. 그는 글쓰기에 대해 매우 확고한 편인데 그가 말하는 글쓰기란 계속해서 읽고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도 하루 4~6시간은 읽고 쓰기를 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재능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글을 읽은 사람이 수표를 줬고, 그 수표가 부도수표가 아니라면 당신은 재능이 있는 것이다.
프랭크 다라본트는 '쇼생크 탈출'과 '그린마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감독이다. '미스트'는 '쇼생크 탈출'과 함께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이다.
아마도 다라본트의 데뷰작이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기 때문인 듯하다. (스트븐 킹은 아마추어 영화인들에겐 그의 작품에 대한 판권을 무료로 풀었다고 한다.)
다라본트는 연출 이외에도 각본에 참여한 영화가 참 많다. 또한 기획에도 매우 진심인 듯하다. '그린마일'도 '쇼생크 탈출'도 너무 감동적으로 본 관객으로서 다른 작품도 기대한다.
줄거리 및 관전 포인트
한 마을에 폭풍우가 지나갔다. 나무가 쓰러져 차량을 덮쳤고, 도로 곳곳은 파였으며,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뭉쳐있다. 데이비드 드레이튼은 그의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시내 큰 마트에 수리에 필요한 물품을 사기 위해 왔다. 마트는 같은 이유로 모인 주민들로 붐빈다.
그때 갑작스럽게 마트 밖으로 짙은 안개가 드리운다. 간간이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부딪히는 소리들이 들릴 뿐이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 하지만 되지 않는다.
코즈믹 호러 :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존재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압도감에서 오는 공포
안개는 사람들을 하나씩 먹어치운다. 그리곤 그 속에서 나타난 괴물들. 공포는 현실이 되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항하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구출대를 기다려야 한다는 입장이고 어떤 이는 집에 있는 가족에게 가봐야 한다는 이유로 위험을 무릅쓴다. 괴물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고, 그저 기도하고 또 기도하기도 한다.
편을 가르고, 맹목적인 믿음이 피어난다. 맹목적인 믿음은 급기야 누군가를 재물로 바치고 스스로의 파멸을 야기한다.
극한의 공포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들에 대해 비교적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너무 개개인의 내면의 공포를 표현하는 방식보다는 전체 군중들의 심리 변화와 행동들에 중심을 잡고 있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내면의 공포심리를 다루기보다 이야기의 흐름과 다음엔 어떤 사건, 어떤 장면이 펼쳐질까를 기대하며 보게 되는 영화이다. 아미도 너무 진지하게 무서운 영화는 싫지만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는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잘 맞을 것 같다. 이야기가 풀어내는 공포와 인간을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이 관전 포인트라면 관전 포인트이다.
그 밖의 이야기
감독의 명성 때문인지, 그의 능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는 연기를 못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얼굴이 잘 알려진 스타급 배우도 없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거슬리는 연기를 보여주는 인물은 없다. 아마도 그만큼 탄탄한 원작과 감독의 연출력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군중으로서의 심리변화를 중심으로 잡았기 때문에 개개인의 심리변화를 너무 깊이 보여준다거나 하는 장면은 없다. 그것도 한몫을 한 것 같다.
다라본트는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기를 바랐다고 한다. 물론 투자자들에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아마도 안개라는 요소가 만들어내는 공포 중에 모든 색을 흐릿하게 하고 마지막엔 아예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흑백이 좀 더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또한 사람들의 깊은 내면보다는 집단으로서 보여주는데도 도움이 됐을 것 같긴 하다. 다만 이미 컬러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가지게 될 거부감이 이 이야기와 맞지 않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꽤 괜찮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 후 감독은 이 영화의 흑백 버전을 만들어 dvd에 수록했다고 하니 관심 있으면 찾아보길 바란다.
흑백으로 만들었으면 뭐 될 뻔 한 영화 '미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