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영화는 왜 만들어질까?
먼저 밝혀야 할 것은 이 영화가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의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당시만 해도 SF 장르가 큰 인기를 끌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SF장르의 흥행은 2001년 개봉한 '메트릭스'에서부터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 보다 2년 전에 개봉한 영화로 당시 사람들에겐 조금은 복잡한 소재와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헐리우드의 제작자들은 이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알아보고 리메이크를 결정한 것입니다.
보통 영화가 리메이크될 때는 전 세계적으로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아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거나, 상업적으로 큰 흥행을 거둬서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았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특정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을 리메이크해서 버프 받고 그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까지도 노리려는 전략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합니다. 영화제 수상 경력은 영화 자체의 흥행은 물론이고 감독으로서도 굉장한 이력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욕을 먹기는 합니다. 원작을 넘는 속편이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원작의 느낌을 살리자니 너무 똑같다고 욕먹고, 다른 느낌으로 작품을 완성하면 원작에 대한 모독이라며 욕을 먹습니다.
이 영화의 경우는 원작 '오픈 유어 아이즈'와 매우 비슷해서 욕먹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는 원작이 나온 지 고작 4년 만에 리메이크된 작품이고, 여자 주인공, 페넬로페 크루즈가 같은 역할로 출연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욕을 바가지로 먹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이 영화를 먼저 접하고 원작을 접했기 때문에 크게 거부감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어떤 면에서는 원작보다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제니퍼 로페즈의 매력도 이 영화에서 더욱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잘 된 SF 물의 특징
SF물이 과거에 흥행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소재가 생소해서 설정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한다는 점과 CG기술의 한계로 인해 영상으로 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일본 B급 특촬물이 될 수 있습니다. (요새 마블이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건 아닌가 걱정됩니다.)
그렇다면 흥행한 SF물의 특징은 뭘까요? 어려운 설정을 쉽고 짧게 설명하고 CG에 공을 많이 들여서 어설퍼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평 중에는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설명했다.' 같은 혹평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SF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의 소재나 주제는 그리 어려운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소재의 복잡성 같은 경우라면 '인셉션'이 더욱 복잡합니다만 이미 이 때는 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SF 소재들에 많이 노출된 상태로 거부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CG의 완성도는 헐리우드가 세계 최고입니다. 마블의 초기 작품들을 보더라도 굉장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오히려 요새 들어서 관객들이 익숙해졌다는 핑계로 CG 완성도가 많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던가, 아니면 어설픈 부분을 감추는 등의 기교로 대체하곤 합니다.
이 영화는 애초에 설정 자체가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뒤죽박죽입니다. 약간의 어설픔은 오히려 주제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입니다.
원작 '오픈 유어 아이즈'와 다른 점이라면 감독이 다른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 말은 이 스토리를 바라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작이 스릴러적 요소와 반전 등에 무게를 실었다면 '바닐라 스카이'는 그것보다는 주인공 데이비드(톰 크루즈)와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의 매력과 사랑에 더욱 초점을 맞춰 보여줍니다. 데이비드의 절망감에 슬픔을 느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가면을 쓴 채 수감되어 있는 데이비드가 심리학자 메케이브와 대화를 나누며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데이비드는 누군가를 죽인 이유로 수감되어 있습니다.
데이비드는 부유한 가정의 남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부자입니다. 매일 놀고먹지만 항상 젊음을 유지하고 주변엔 늘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그에겐 섹스파트너인 줄리아나(카메론 디아즈)가 있습니다. 물론 줄리아나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녀는 데이비드를 사랑합니다. 그의 생일 파티에서 데이비드는 소피아를 만나게 되고 한눈에 반합니다. 데이비드는 소피아와 하루를 함께 보내게 됩니다. 소피아는 눈 부시고 데이비드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된 듯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줄리아나는 데이비드와 동반 자살을 시도합니다. 데이비드를 차에 태우고 그대로 난간을 벗어납니다.
데이비드는 후유증으로 발을 절게 되고 얼굴의 반이 괴물처럼 변해버렸습니다. 데이비드는 좌절합니다. 친구들도 저버리고 술에 절어 삽니다. 좌절 속에서 데이비드는 소피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녀 앞에 이 얼굴로 나설 수는 없습니다. 데이비드가 의사들의 권유로 마스크를 쓴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데이비드는 용기를 내고 소피아를 찾아갑니다. 눈앞에서 돌아서는 데이비드를 잡아준 건 소피아입니다. 만날 약속을 하고 돌아옵니다. 친구와 함께 찾아간 바에서 자신을 피하는 소피아에 실망한 데이비드가 추태를 부립니다. 소피아는 나가버리고 술에 전 데이비드는 길가에 쓰러집니다. 길에서 쓰러져 있던 데이비드를 깨운 것은 소피아입니다. 데이비드는 소피아와 사랑을 나눕니다. 그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무너져가던 가족의 유산, 회사를 다시 살립니다. 의료기술은 발전했고, 그는 다시 사고 이전의 자신의 얼굴을 되찾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피아의 얼굴에 줄리아나가 겹쳐집니다. 데이비드는 혼란스럽습니다. 소피아와 찍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사진들에 줄리아나가 들어가 있는 겁니다. 데이비드는 줄리아나를 죽이고 맙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죽인 사람이 소피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을까요? 그는 다시 마스크 안으로 얼굴을 숨깁니다. 메케이브의 집요한 질문에 데이비드는 자신도 모르는 이름을 말하게 됩니다. L.E. 생명연장(Life Extension)을 해주는 업체라는 것을 알아내고 박사와 데이비드는 그곳을 찾아갑니다. 거기서 데이비드는 자신이 자각몽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건물을 박차고 나갑니다. 세상은 텅 비어있었고, 수수께끼의 남자에 의해 옥상으로 안내됩니다. 이 남자는 기술지원팀의 벤투라는 남자로 데이비드가 냉동수면 상태이며 150년이 지났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그의 삶 중 어디부터가 데이비드가 만들어 낸 허상인지를 알려줍니다. 술집에서 나온 후 길가에 쓰러진 후부터 입니다. 데이비드는 그 후 소피아를 만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데이비드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옥상에서 뛰어내려 현실에서 빈털터리로 깨어나거나 계속해서 자각목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데이비드는 마지막으로 소피아와 친구, 메케이브 박사를 만나고 그대로 뛰어내립니다.
그 후 들리는 목소리. " Open your eyes."
쥔장 나름의 해석
영화는 역시 해석하면서 보는 맛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오픈유어아이즈'입니다. 리메이크작의 제목은 '바닐라스카이'입니다.
'오픈유어아이즈'는 환상에서 깨서 현실에 눈을 뜨라는 의미입니다. 반면, '바닐라스카이'는 모네의 작품 속 환상적인 노을을 의미합니다. 주인공이 옥상에서 마지막 선택을 할 때 하늘의 환상적인 노을이 그러합니다. 제목은 그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원작은 현실에 후속작은 환상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런 면에서 원작의 내용을 비틀어서 그냥 자각몽 속에서 사는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마지막 장면이 떨어진 후, 암전 후 누군가의 목소리에 깨어나 동공이 크게 확장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어쩌면 이게 그냥 또다시 시작되는 자각몽인지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잠깐의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후속작 '바닐라스카이'가 원작보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있고 싶은 곳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마도 감독은 마지막 깨어나는 눈을 통해 알아서들 하고 싶은 선택들을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건 아닐까 합니다.